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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봉준호 감독님 추천사를 마케팅으로 밀었던 영화가 있습니다.
배우진은 괜찮지만 비교적 저예산의 첫 장편 영화라 궁금하여 찾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옥자에서 연출팀을 맡았던 분의 장편 데뷔작이더라고요.
결국 봉준호 감독님과의 인연이 있어서 추천사를 받았겠거니 하고 큰 기대는 없이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그런데 웬걸 영화가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습니다.
기대하지 않은 영화에서 기대 이상의 수확을 얻는 건 늘 즐거운 일입니다.
일단 영화 얘기부터 살펴보고 나머지 이야기 이어가 보도록 하죠.

 


영화줄거리 -1장

 


영화는 코 고는 소리를 시작으로 "누가 들어왔어"라며 잠꼬대를 하는 현수(이선균)를 비추며 시작합니다.
잠꼬대인 것을 확인하고 안심한 것도 잠시, 들려오는 괴이한 소음에 임산부인 수진(정유미)이 긴장하며 나가보니, 슬리퍼가 문지방에 껴서 바람에 문이 닫힌 걸 막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또 다른 인기척에 놀라는 것도 잠시, 키우던 포메라니안 후추가 구석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안심하는 수진.
다음 날 배우 일을 하는 현수와 직장에서 근무하는 수진의 행복한 신혼생활이 나오고,
아랫집에서 올라와 "일주일 내내 쿵쾅거리는 소리에 시끄러웠다"는 층간 소음 민원에 "어제 하루였는데 너무 한다"라고 분해하는 수진의 모습 등 평범한 일상이 그려집니다.
그날 밤, 현수는 자신의 볼을 벅벅 긁다 못해 피범벅을 만들고, 그 상처 때문에 결국 현수는 배역에서 잘리고 말죠.
다음 날, 잠자리에서 사라진 현수를 찾아 나선 수진이 마주한 것은 냉장고 앞에 멍하니 서서 생고기와 날계란을 씹어 먹는 현수의 모습이었습니다.
흔들어 깨우는 수진의 외침에도 아랑곳 않고 창문으로 걸어가 뛰어내리려 하는 현수.
가까스로 수진이 말린 끝에 미수에 끝나고, 수진의 원망 섞인 타박에도 깨어난 현수는 어리둥절하기만 합니다.
결국 수면 클리닉에서 몽유병 판정을 받고, [둘이서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라는 가훈이 클로즈업되는 가운데,
약을 처방받은 뒤 쇠창살을 설치하고, 술을 치우는가 하면, 움직이지 못하게끔 온몸을 봉인할 수 있는 침낭에 들어가 잠을 자며, 병을 고치기 위한 두 사람의 노력이 그려집니다.
그런 노력이 통했는지 자고 일어난 아침 침대에 편안히 누워 있는 현수를 발견하지만 평화로움도 잠시, 밖으로 나선 수진은 어질러진 거실의 모습을 보고 불길함을 느낍니다.
바닥에 떨어진 냉동만두 봉투에는 털이 한 움큼 묻어 있었고, 그 냉동만두가 원래 있었을 냉동실을 열어본 수진의 비명 소리와 함께 1장이 끝이 납니다.

 

영화줄거리 -2장

 


그리고 2장은 분만을 하는 수진의 모습으로 시작되죠.
이게 참 괜찮은 연결이라고 생각하는 게, 1장에 후추의 최후에 잔인한 장면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분만 장면에 긴장을 유발하는 연출을 사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관람을 하는 우리는 엄청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1장에서 말 못 하고 저항도 못하는 강아지 후추가 이미 후춧가루가 된 상황에서
똑같이 말도 못 하고 저항도 못하는 데다, 이번엔 인간이기까지 한 갓난아기가 등장하는데, 여전히 현수의 몽유병은 해결되지 않았거든요.

굳이 과장되게 연출하지 않아도 상황만으로 불편할 것이라는 걸 이해하고, 오히려 담담하게 연출해서, 이 괴리감을 통해 더 불안함을 자극하는 셈이죠.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의 시간을 가진 뒤, 아이가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옵니다.
현수는 집을 따로 얻어 따로 지낼 것을 제안하지만, '둘이서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라며 가족은 함께 지내야 함을 수진이 강조합니다.
그런 면도 재밌는 게 사실 수진은 피해자 입장입니다. 그런데 능동적인 모습을 보이며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시도를 하는 것 역시 수진입니다.
그것도 다른 이유가 아닌, 사랑이란 이유 때문에 더욱 아이러니해지고, 이 때문에 잠의 전개가 흥미진진해지는 것 같습니다.
거실에서 아이를 보다가 싸함을 느낀 수진은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욕조에서 잠이 드는데, 아니나 다를까 현수가 문을 열려다 안 되자 몸통 박치기까지 하며 문이 쿵쾅거리는 밤이 지나갑니다.
다음 날 결국 현수가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끔 자물쇠까지 채우는 그들.
이런 가운데 수진의 어머니가 들러 귀신이 들린 게 아니냐며 부적을 써주고 무당을 부르기에 이릅니다.
처음엔 이런 걸 왜 믿냐며 웃어넘기는 수준이었지만, 느긋한 수면클리닉의 태도에 비해 호전이 되지 않는 현수의 상황과 매일 밤 겪는 불안한 상황들로 인해 점점 수진도 궁지에 몰립니다.
밤을 새워서 현수를 지켜보는가 하면, 현수가 깨어난 걸 확인하고 잠이 들고, 비어 있는 아이의 침대에 잔뜩 놓여 있는 맥주캔과 쓰레기통에서 아이를 발견하는 꿈 등이 이러한 수진의 심리 상태를 대변합니다.
결국 '남자들과 같이 살고 있구먼'이라며 반반한 수진에게 홀린 남자 귀신 하나가 현수에게 씌었다는 이야기에 과거의 남자 친구들을 조사하기 시작하는 수진.
특히나 무당은 귀신이 '시끄러운 개도, 맨날 노는 아이도 죽이고, 너랑 단둘이 살고 싶다'라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는데 이미 후추는 죽은 상황이기 때문에 수진은 더욱 절실히 찾아보게 되죠.
전 남자 친구들이 모두 살아있음을 알고 무당의 말을 넘기려던 찰나,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라며 민원을 제기하던 아랫집 할아버지를 떠올리는 수진.
지금은 새 집이 이사 왔기 때문에 혹시 하는 마음에 방문해 할아버지의 거취를 묻자, 그 할아버지는 이사 온 아주머니의 아버지였으며,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할아버지의 이름을 받아내며 무당의 말을 믿기 시작하는 수진은 정신적으로 궁지에 점점 몰리게 됩니다.
이후 수면 클리닉을 다니며 현수는 거의 완치 판정을 받으나 수진은 정신병원에 입원한 상태였습니다.
수진을 맞이하러 나가는 현수지만, 수진은 어제 오후 이후로 행적이 묘연한 상황.
결국 허탕을 치고 돌아와 아이를 장모에게 맡기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집은 부적으로 빼곡하게 가득 찬 상황이었습니다.
수진은 나은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되어 있었던 거죠.
처음엔 현수도 다 나았다며 대화를 시도하지만, 현수의 행동 하나하나에 귀신이 빙의했다는 의미부여를 하고, 심지어 49제를 지낸다며 현수가 자는 사이 굿까지 한 데다,
설상가상 냉장고에는 아랫집 개가 들어 있고, 아랫집 아주머니까지 욕조에 납치된 상황을 보고 현수는 말을 잃습니다.
더 이상 수진은 상식적인 대화가 통하는 상황이 아니었던 거죠.
백일째인 오늘 12시가 지나면 귀신에 영원히 길들게 된다며 어떻게든 귀신을 떼어내려는 수진.
빨리 현수의 몸에서 나가라며 전동 드릴로 아주머니의 머리를 뚫으려는 수진을 보고, 갑자기 현수는 알겠다며 할아버지의 말투로
'더럽고 치사해서 나가준다'며 아주머니에게 작별을 고하고 창문을 엽니다.
이때 소진의 눈에 빛이 들어온 게 비치고, 다시 창문이 닫히자 현수는 털썩 쓰러지죠.
그제야 안심한 듯한 수지는 현수의 품에 안겨 잠이 들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총평 - 생소한 장르의 신선한 전개

 


잠은 연출적 센스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굳이 잔인한 장면이나 점프 스케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충분한 긴장감을 만들어냈으며, 이 어려운 작업을 성공시켰기 때문에 잠만의 유니크한 매력이 생겨납니다.
영화에서 가장 수위를 탈 만한 장면이 자기 볼을 긁어서 흉터가 진 장면과 아랫집 강아지가 냉동실에 들어있는 모습 정도일 텐데, 이것도 직접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밀지 않아 완곡한 느낌을 줍니다.
분명 좋은 연기자지만 티켓 파워면에 있어서 엄청난 힘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배우진과 낮은 제작비 등을 고려했을 때, 기본적인 공포의 연출이 좋은 만듦새를 지녔기 때문에 평이 좋다고 봅니다.
또한 각 장면에 긴장감뿐만 아니라 복선을 쌓아가는 과정도 충실합니다.
영화 도입부에 '일주일째 소음을 참았다'부터 시작해서, 아랫집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최소한의 분량으로 충분한 빌드업을 쌓았고,
수진이 오컬트에 빠지게 되는 것 역시 엔딩의 모습에서는 좀 과하지만, 개연성이 없다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
장면 장면의 긴장감뿐만 아니라 그 연결성마저 좋으니 영화를 나쁘게 볼 이유는 없죠.
굳이 허점을 찾는다면 엔딩을 꼽고 싶습니다.
무엇보다 영화의 페이스가 느긋하고 정교했던 것에 비해서, 마지막 전개는 너무 빠르고 성급합니다.
결국은 장르의 융합이 깔끔하지 못한 부분이 문제라고 봅니다.
비슷한 예시로 맨인 더 다크를 들어볼 수 있을 텐데요.
맨인 더 다크는 스릴러 서스펜스로 시작하는 영화입니다.
주인공들은 돈 많은 맹인의 집에 잠입하는 도둑질을 시도하나, 알고 보니 이 맹인은 눈만 안 보일 뿐 전투력 최고인 군인출신이었습니다.
결국 한 명은 죽게 되고, 남은 일행들이 노인과 숨바꼭질하는 것이 영화의 주요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응원해야 할 주인공들은 도둑이고, 맹인 할아버지는 피해자잖아요.
처음에야 상황 때문이라고 해도, 지속적으로 이들이 잘 되길 기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결국 맹인 할아버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서 밸런스를 맞추게 되는데, 이게 영화가 이전에 가져오던 서스펜스와는 결이 많이 다른 범죄물이 돼버리면서 몰입이 깨져버리는 상황이 발생됩니다.
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몽유병이라고 하는 기존의 공포물과는 다른 설정을 가져와서 계속해서 그 이야기로 진행하고, 주변 클리닉에서도 피부를 긁어 피가 나거나 음식을 먹는 모습 등이
카탈로그에 실려 있는 등, 몽유병 쪽에 큰 힘을 실어놨단 말이죠.
문제는 '그냥 약 먹고 치료하니까 치료가 됐어요.' 하면 좋은 영화적인 갈등 해결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현실적일 수 있으나 어떤 카타르시스나 쾌감이 생기기는 어렵죠.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느냐? 갈등을 새로 만듭니다.
그런데 몽유병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서스펜스가 갑자기 오컬트로 급선회하니
복선이나 개연성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좀 급하게 새로운 갈등을 만들어서 그걸 해소시키는 이 과정들이 짧은 러닝 타임에는 다 담기 힘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이건 제작비의 한계와 데뷔작임을 감안하면 굉장히 준수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재만 좋았다가 아니라 그 소재를 어떻게 살릴지도 훌륭히 보여냈기 때문에 정말 충무로에 오랜만에 기대되는 신인 감독이 등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런 영화들을 더 자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리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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