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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정 에르큘 포아로가 오리엔트 특급 살인으로 시작해 나일강의 죽음을 지나 베니스 유령 살인 사건으로 돌아왔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2편에서 10년이 지난 1947년의 이탈리아 베니스입니다.
이번 작품을 보고 나니, 이 시리즈가 향하는 방향과 에피소드의 순서가 정해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는데요.
먼저 이번 영화를 해석하기 위해서는 지난 두 편의 작품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나일강의 죽음에 대한 스포일러가 들어있으니 주의해 주세요.
줄거리 1 : 푸아로의 변화
푸아로는 1편부터 대칭과 완벽함, 옳고 그름 등에 대해서 강박적인 집착을 보여주었습니다.
아침에 먹는 두 개의 달걀을 똑같은 크기로 맞추는 것과 완벽한 대칭의 콧수염이 이를 상징하죠.
그런데 3편의 푸아로는 한눈에 봐도 큰 차이가 나는 달걀 2개를 크기를 재며 신경은 쓰지만 결국은 먹는 모습을 보입니다.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이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1편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는 차마 벌할 수 없는 상처받은 복수자들을 만났습니다.
2편 나일강의 죽음에서는 사랑의 어리석음과 아름다움을 모두 느끼죠.
그는 원래 이성과 논리에 기반한 사람입니다. 신을 믿지 않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하죠.
하지만 두 개의 사건을 겪으며 푸아로가 가진 대칭과 균형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지난 나일강의 죽음 마지막 장면에서 수염을 밀고 나타난 모습과, 이번 작품에서 먹는 비대칭 계란이 이런 변화를 묘사하고 있죠.
그의 냉철한 이성이 점점 감성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은 추리극의 무대에도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1편은 차가운 눈으로 덮인 선로 위였고, 2편은 메마른 사막을 가로지르는 강물 위였습니다.
3편은 물의 도시 베니스인데요. 심지어 폭풍이 몰아쳐 비가 쏟아지는 상황이죠.
얼음처럼 차갑게 사건을 판단하고 범죄자를 찾아내던 푸아로는 점점 더 물러지고 감정적으로 변해갑니다.
물이라는 요소의 증가가 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베니스 유령 살인 사건은 사건 해결을 멈추고 칩거에 들어간 푸아로가 다시 탐정으로 복귀하는 이야기인데요.
무엇이 그를 은퇴하게 했고, 다시 돌아오게 만들었을까요?
줄거리 2 : 영화의 배경
영화의 배경인 1947년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시기죠.
때문에 전쟁의 후유증을 앓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2차 대전은 많은 것을 바꿔놓았죠. 수많은 죽음은 신에 대한 믿음을 앗아갔고, 미군과 함께 넘어온 문화가 유럽의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원작 소설의 제목인 핼러윈 파티 역시 미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문화죠. 그만큼 사건의 배경은 기이합니다.
오래된 가톨릭 도시인 베네치아에서 상업적인 성격이 강한 기독교 행사인 핼러윈 파티가 열리고, 마녀로 붙잡혔던 영매의 교령회가 진행됩니다.
이를 파헤치러 등장한 푸아로는 신과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철저한 이성과 논리의 인물이죠.
그런데 재미난 사실은 이 교령회를 주도하는 사람 중 영혼이나 신을 믿는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자신에게 돈을 뜯어낸 협박범을 찾기 위해서, 유명한 영매가 되어 돈을 벌기 위해서, 새로운 추리 소설을 흥행시키기 위해서 등, 각자의 이득을 위해 열린 교령회였습니다. 이들에게 신이 나 영혼의 개념은 불안하고 불확실한 것들을 설명하고,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한 것뿐입니다.
주인공 푸아로 역시 1차 대전에 참전한 군인이었죠.
지난 작품에서 그의 과거 상처들이 전쟁과 관련되어 등장했었습니다.
그는 신이 나 영혼이 존재한다면 우리의 삶에 의미와 질서가 생길 테니 얼마나 안심이 되겠느냐 말하는데요.
그러면서도 자신이 그동안 보았던 끔찍한 세상을 생각하며, 신은 없을 거라고 말합니다.
결국 푸아로는 약물에 취해서 환각을 보고, 환청을 듣는 와중에도 이성적으로 상황을 판단합니다.
그에게 세상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진 논리적인 구조의 집합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와 다르게 푸아로를 찾아 도움을 청합니다.
그는 영매 레이놀즈와 같은 사람을 약자들을 먹이 삼는 기회주의자라고 비난하죠.
자신이 칩거해 세상을 외면하는 동안, 사람들의 불안을 파고들어 먹이로 삼는 이들이 세상을 더 끔찍하게 만들 것이기에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탐정 푸아로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은퇴한 푸아로는 베니스에서 휑한 옥상에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도시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죠.
베니스의 전경을 보면 지붕이 가득합니다.
그가 지내는 옥상 같은 건물은 찾아보기 어렵죠.
아래층에 문을 걸어 잠근 그의 옥상은 다른 사람의 방해를 받지 않는 간결한 공간입니다.
혼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이 괴로운 그에겐 마치 천국 같은 공간인 셈이죠.
결국 다시 고통과 불합리가 가득한 인간 세계로 내려온 푸아로는 탐욕과 증오, 복수와 살인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게 됩니다.
푸아로가 다시 탐정으로 복귀한 것은, 그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탈락했기 때문이 아님을 보여주는데요.
모든 사건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푸아로는 1층에 현관문을 열어두고, 자신을 기다리던 사람의 의뢰를 받아줍니다.
그는 무엇을 향해 가려는 걸까요?
지난 오리엔트 특급 살인에서 푸아로는 벌하기 어려운 죄와 마주합니다.
12명의 영혼을 산산이 부숴버린, 처벌받지 않은 악마 같은 범죄자에게 법이 내리지 못한 형벌을 내렸던 사건이었죠.
그는 공모자들을 모른 척하고 풀어줍니다.
이성과 논리로 모든 트릭을 간파해 냈지만, 이미 말할 수 없이 상처받은 영혼들은 벌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고, 그들의 영혼을 구해낼 방법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어서 도착한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의 죽음을 맞이하는데요.
사랑의 눈이 멀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목격하고,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과 아끼는 친구의 죽음을 겪죠.
푸아로는 인간이 사랑 같은 감정 앞에서 얼마나 어리석고 나약해지는지 보면서도, 그 사랑이 위대한 용기를 가져오는 것 또한 느낍니다.
그렇게 회색 뇌세포라 불리는 푸아로는 점점 더 인간적인 면모를 더해갑니다.
저는 푸아로가 다시 속세로 돌아오기로 마음먹은 건 레오폴드 같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약자들을 지키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똑똑한 아이들이 상처받고 비뚤어진다면 더 무서운 존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총평
영매의 조수로 일하던 홀랜드 남매는 전쟁고아입니다. 어른들의 욕심으로 고통받은 아이들입니다.
이 남매는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라는 영화를 절반밖에 보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는 1944년 전쟁 중에 만들어진 따뜻한 가족 영화입니다.
악당도 없고 비극도 없는 스토리로 마음의 위로가 필요하던 시절을 위한 작품이죠.
이 작품에서 세인트루이스는 마음의 안식을 주는 고향입니다.
홀랜드 남매도 행복을 찾아 루이지애나로 떠나겠다고 하는데요. 푸아로가 이들에게 준 것은 단순한 돈이 아닙니다.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엉켜버린 진실을 풀어내고, 길 잃은 이들을 인도하는 이정표였죠.
케네스, 브레네, 푸아로 시리즈는 늘 원작과 비교되며 평가받습니다.
원작과 똑같이 만들지도 않고, 특별히 새롭지도 않다고 말이죠.
그러나 저는 1920년에 만들어진 원작과 똑같은 푸아로를 2020년대에 그대로 재현한 것보다는 오늘날에 어울리는 캐릭터로 재해석하는 게 더 재미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만나요.' 같은 작품을 오늘날 그대로 재현한다면 사람들은 같은 위로를 받을까요?
푸아로는 여전히 괴짜 같은 성격과 독특한 외모에 뛰어난 추리 실력과 사건 해결 능력을 가졌죠.
하지만 냉철한 이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따뜻한 인간성을 조금씩 담아내는 변화를 줬습니다.
저는 오늘날의 사회가 객관적이고 이성적이며 정의롭다는 착각에 빠진 세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여 그들만의 정의를 외치는 세상 말이죠.
푸아로가 냉철한 이성과 따뜻한 인간성을 모두 가진다면 그건 마치 초인 같은 존재, 영웅적 캐릭터일 겁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고 가장 따뜻한 선택을 해주는 영웅을 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영화리뷰 마치겠습니다.